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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 살인마들.


세상에 그들이 나타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지칭할 어떤 말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킬러니 닌자니 하는 말들을 갖다붙였지만 그 어떤 것도 그들에게 걸맞는 이름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런 이름은 너무 감상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반 공식적으로 그들은 암살자로 불렸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을 몰래 죽이는 일이 없었다. 어떤 일을 몰래 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세상에 알려지는 데 거리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자신들이 알려지는 것에나,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일부 사람들은 쉬쉬하면서도 그들을 살인마라 불렀다. 그 어감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그 호칭은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았지만, 나는 살인마야말로 그들을 표현하는 정확한 말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그들이 무엇인지 몰랐다. 인간인지 인간의 변종인지 아니면 새로운 그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뜻 보기에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신체 능력은 인간을 훨씬 능가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빨라서 때로는 송곳이나 화살 비슷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송곳이나 화살 같은 것으로 변신할 수도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정형적이지 않았다. 혹자는 그들이 물건이나 혹은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일 때만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해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건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거였다. 그들은 마치 사람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갖고 있는 확인할 수 없는 기이한 능력들까지도 오로지 사람을 죽이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은 동정이나 연민과 같은,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 방해가 될만한 감정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순간 그들은 항상 즐거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물론 그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심지어 자기네끼리 죽이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반드시 어느 한쪽이 완전히 죽을 때까지 서로를 공격해댔는데, 실제로 이런 일은 드물었다. 서로 가진 능력이 비등한 탓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런 순간에도 신나게 웃어대고 있었다.

그들이 사람을 죽이는 데 어떤 기준이 존재하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해된 사람들에게는 요만큼의 공통점도 없었다. 단 한번, 그들을 추종하는 일종의 종교 세력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 종교 지도자는 그들이야말로 이 세계의 종말을 부를 신의 대행자, 즉 천사들이라 주장했다. 그 종교에 귀의하면 그들의 단죄 - 그는 그들의 살인 행각을 그렇게 표현했다 - 에서 벗어나 구원받을 것이라는 것이 그 종교의 핵심이었다. 그들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아무때나 나타나서 사람들을 죽이고 사라지는 그들의 존재에 대해 혼란을 느낀 사람들이 그런 설명에 납득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곧 엄청난 수의 신도가 생겼다. 신도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그 종교 지도자는 갓 세력이 커지기 시작한 신흥 종교가 흔히 하듯 거대한 집회를 열었다. 참사가 일어난 것은 바로 그날이었다.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갑작스레 나타난 그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들은 마치 개미집을 발견한 아이들처럼 기뻐하며 사람들을 도륙했다. 제일 먼저 살해당한 것은 종교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건 그가 지도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잘 띄는 화려한 옷을 입고 가장 높은 단상 위에 홀로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하나하나 찾아가 죽였다. 그 이후 그들에게 죽임당하는 것이 곧 구원의 길이라 주장하는 세력도 일부 나타났지만 곧 사그라들었다. 그들의 살인은 어떤 의미나 이유가 있다고 보기엔 너무 무차별적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든 그들에게 모조리 살해당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전히 언제 어느 곳에 나타날 지 모르는 그들을 두려워하며 시간이 흘렀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의뢰'를 할 수 있다는. 방법은 간단했다. 단지 인터넷에 누군가를 죽여 달라는 글을 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비공개여도 상관없었다. 길지 않아도 되었다. 단 한 문장, '-를 죽여줘'라는 단 한 마디만으로 그 말은 이루어졌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룰이 있었다. 내 의뢰가 그들에게 받아들여져 내가 죽여 달라 부탁한 사람이 살해되고 나면, 그들 중 그 의뢰를 수행한 이가 나를 찾아와 나를 죽인다는 것이었다. 만일 여러 사람을 죽여 달라 의뢰했다면 그는 나를 시작으로 내 가족, 친척, 친구들 순으로 내가 죽여 달라 요청한 사람의 수만큼을 죽이고 떠난다는 것이다. 만일 이때 찾아온 암살자와 맞서 싸워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나는 살 수 있다. 처음에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문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사라지는 것이 누군가 몰래 인터넷 어딘가에 써갈긴 요청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설명이 될 수 없다고들 믿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한들, 누가 그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제 목숨을 담보로 잡겠는가? 인간이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소문이 퍼질만큼 퍼진 이후 이번에는 또다른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살인 의뢰를 하고도 죽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리고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은 방법에 관한 소문이었다. 의뢰를 하고, 내 의뢰가 수행된 후 '암살자'가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오기 전에 그 암살자를 죽여 달라는 새로운 의뢰를 해야 했다. 그러면 그들끼리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살 수 있으려면 처음 의뢰를 수행한 암살자가 그들간의 싸움에서 이겨야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이러 온 다른 암살자들을 이기고 살아남으면 그는 의뢰인을 죽이러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져서 죽는다면, 그를 이긴 이들은 다시 나를 죽이러 찾아온다. 이때는 그 전에 그들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또 하면 된다. 마치 카드 돌려막기처럼, 언젠가 전 단계의 암살자가 이겨서 그 순환이 끊길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확실히 '살아남을 지도 모르는' 방법이 제시되자 여기저기서 확인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방법으로 의뢰를 하고도 살았다는 사람의 증언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헀다. 비슷한 시기, 자기네끼리 싸워대는 그들의 모습이 예전보다 자주 목격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점차 그 소문이 진실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뢰하는 사람이 느는 만큼 그들에게 죽는 사람도 늘어났다. 어떤 사람은 같이 사는 부모를 죽여 달라는 의뢰를 했다. 의뢰는 단시간에 수행되었다. 그리고 의뢰를 수행한 암살자는 다른 방에 숨어있던 그가 미처 다른 암살자에게 의뢰를 하기도 전에 그를 찾아내 죽였다. 다른 암살자에게 암살자를 죽여 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는 건 반드시 첫 의뢰가 수행된 후 그가 자신을 죽이기 전이어야 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그 사이 시간에 적절하게 새로운 의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설령 새로운 의뢰를 했다 하더라도 새로운 그들이 오기 전에 살해당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 무언가 의뢰를 한 모양이다. 누구를 죽여 달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죽이고자 한 사람이 한 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엄마의 안전을 제일 먼저 걱정했을 리가 없으니까. 나는 기억나지 않는 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새로운 의뢰를 작성했다. 글을 올리고 문득 돌아본 내 방 베란다 너머에서 무언가 빨갛고 하얀 것을 보았다. 종이조각을 얼기설기 이어붙인 것처럼 생긴 그 무언가는 허공에서 가만히 일렁이는 듯 하면서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까르르 하는 웃음 소리가 언뜻 들린 것도 같았다.

그들에게 맞서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그들을 죽이거나 혹은 그 비슷한 상태로 몰아갈 수 있으리라 짐작되는 것은 그들이 그들끼리 싸울 때 사용하는 독침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정작 자기네끼리 죽일 때 본인들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독침 비슷한 것을 이용해 서로를 죽였다. 수없이 많은 독침을 총처럼 쏘아댈 수 있는 작은 무기- 그들은 동족을 죽이고 나면 어째서인지 그 무기를 버리고 사라졌다. 당연히 그 무기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고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무기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독침이 얼마만큼의 성능을 내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이야기가 달랐다. 가끔 급소로 보이는 곳을 여러번 맞추었더니 금세 죽어 사라지더라 하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확실치는 않았다. 독침의 성능이 확실치 않은 것은 그들끼리 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독침 몇 대를 맞았을 뿐인데 죽어 사라지는 이도 있었고 온몸이 독침 투성이가 되고도 멀쩡하게 움직여 상대방을 죽여버리는 이도 있었다. 진짜도 그러한데 하물며 그 무기의 복제판은 어떻겠는가. 그나마 한두 번 만으로는 안된다는 거, 상대가 고슴도치처럼 보일 만큼 엄청난 양을 쏘아대야 겨우 그들을 죽음 비슷한 경지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정설에 가까웠다.

의뢰를 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나는 그 무기의 복제판을 구입해 갖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이용해 독침을 쏘아댔다. 제대로 조준하고는 있는지, 제대로 맞고는 있는 것인지 고민할 틈은 없었다. 내 새로운 의뢰를 받아들인 암살자들이 이쪽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똑똑, 방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 일도 없어!" 나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나는 그가 얼마나 빠른지 알고 있었다. 이 방문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그는 이 방을 빠져나가 아무런 무기도 없는 엄마부터 먼저 죽일지도 모른다. 나는 최대한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제발, 그곳이 그의 급소 중 하나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그가 쓰러졌다. 그 정도로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다가가는 순간 공포 영화 속의 살인마처럼 벌떡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로 살인마니까. 두려움을 눌러참으며 책상 너머에 쓰러져 있을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엄마였다. 나는 꽥 소리를 지르며 방문을 밀어닫고 문을 잠갔다. 방금 노크를 했을 때 문을 잠가놓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며 문을 의자로 틀어막았다. 탕탕탕,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방금 그게 무슨 소리였냐고 외쳐묻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도 엄마는 문을 계속 두드려댔다. "알았어, 금방 나갈게! 문 앞에 서있지 마!" 그제서야 바깥이 잠잠해졌다. 상황이 정말 심각해졌다고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최대한 빨리 이 일을 처리해야 했다. 무기를 손에 꽉 쥐고 책상 너머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방 안에는 빨갛고 하얀 무언가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문득 소름이 돋았다. 무서운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만을 빌며, 그러나 과연 그 외의 상황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몸서리치며 나는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놀란 눈을 한 엄마가 서 있었다. 조금 힘이 빠졌다. "...문 앞에 서 있지 말랬잖아." "걱정되는데 어떡해." 엄마는 내 어깨 너머로 내 방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진짜 아무 일 없어?" "없어. 책이 한꺼번에 떨어져서 그래." "근데 문은 왜 잠가놔." "...몰라." 나는 다시 방문을 닫았다. 그들이 죽거나 혹은 쓰러졌을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개체마다 차이가 큰 탓도 있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의 시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할 뿐 확실히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껏 어째서 왜인지를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나는 방 안을 좀더 구석구석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엄마가 무사하다면 그건 분명 아직 이 방 안에 있을 터였다.

옷장 옆 구석에, 빨갛고 하얀 종이를 얼기설기 걸친 무언가가 처박혀 있는 게 보였다. 그건 마치 작은 마네킹처럼 보였다. 보이기만이 아니라 만졌을 때의 감촉도 그랬다. 내가 쏜 것이 분명한 독침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얼굴은 차갑고 딱딱했다. 정말로 죽은 걸까? 정말 이걸로 끝난 걸까? 고작 이 정도로?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쉬웠다. 내가 아주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행운이 온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나는 한가운데 독침이 꽂힌 채 커다랗게 뜨여 있는 그의 눈동자를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눈동자의 감촉마저도 피부와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같은 느낌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밥 먹을래?"

나는 머뭇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부엌에서 엄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며 물었다. "혹시, 엄마는 뭐 이상한 거 못 봤어?" "이상한 거?" "내 방에서 뭔가 이상한 게 나왔다거나..." 엄마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거라..." "아니, 없었으면 심각하게 생각 안 해도 돼." "그래?" 엄마는 싱긋 웃었다. "뭐, 딱히 이상한 건 없었는데, 네 엄마가 있길래 먼저 죽이긴 했어. 그거 말곤 잘 모르겠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꿈에서 깼다.

......무슨 놈의 꿈이 이렇게 디테일해...orz


by 고이 | 2009/11/20 23:54 | 생활 | 트랙백 | 덧글(2)

레이드.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정당한' 분노들이 흘러 넘치고 있는데 정작 그 분노가 현실적으로 표출되는 상대는 '평범한 20대 여자'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화도 사람 봐 가면서 내고 행동도 사람 봐 가면서 할 거면,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자. 우린 그냥 약하고 만만하면서도 화풀이할 명분이 서는 상대가 필요하다고.

by 고이 | 2009/11/13 20:15 | 잡상 | 트랙백(1) | 덧글(2)

데굴데굴.


이전보다 글쓰는 능력이 엄청나게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남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기분이긴 한데, 마음에 드는 글을 읽었을 때는 더 그런 기분이 된다. 짧은데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고대로 표현해놓은 듯한 글을 하루에도 몇 개씩은 보게 되는데 - 그야 그런 사람들의 사이트만 링크되어 있으니까 - 볼 때마다 제일 마음에 든 글을 따라 써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곤 나라면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할 것 같은 어휘들이 하나하나 꼭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고,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이토록 명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데 대한 기쁨과 상대적으로 밀려오는 약간의 좌절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보통은 전자를 택하고 이히히 웃어버리지만.

싸우는 건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을 때, 그 의견 자체의 정당성 혹은 글의 논리성과는 상관없이 한쪽에게만 더 사나운 집중포화가 쏟아질 가능성이 높은 일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똑같이 헛소리를 해도 한쪽은 단지 저쪽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부류의 어리석은 동조자를 얻거나 타인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조심스러운 비판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데, 다른 쪽은 희대의 무개념인이 되어 만신창이가 된다. 설령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공들여 쓴 글이라 해도 단지 '이쪽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하나 꼬투리잡혀 난도질당하기 일쑤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쪽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소심해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온라인에서의 다툼일 뿐인데 뭐, 하고 고개를 돌리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한 것이다. 그만큼 저쪽의 목소리가 더욱더 높아지는 것을 우울하게 지켜보면서. 이전에도, 또 그 이전에도 되풀이될 때마다 이런 식이었고 마지막조차 매번 똑같았다. 온라인상이라고 해서 공평한 의견교류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여전히 환상에 불과하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논쟁이란 서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 권력이 비슷하면서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비등한 수준이며 서로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만한 성의를 갖춘 두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야 논'쟁'이 되기는 힘들겠지.

by 고이 | 2009/11/12 15:53 | 잡상 | 트랙백 | 덧글(2)

요즘의 혼란.


올해 들어 피부가 급격히 나빠졌다. 화농성은 아닌데 피부 속에서 염증이 부풀었다 말았다 하는-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일시적으로 매끄러워졌던 피부가 저녁이 되면 다시 울룩불룩해지는-신경쓰이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생전 처음 간 피부과에서는 성인 여드름이 어쩌고 하며 최소 30만원짜리 관리 코스를 권했다. 집어치우라지,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일단 원인이라 생각될 만한 것들을 다 끊었다. 그러고 나니 다시 조금씩 좋아지려는 기미가 보여서 기뻐하고 있었는데 요 며칠 사이에 다시 심각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대체 왜?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생활도, 사용하는 스킨과 에센스도, 심지어 스트레스의 체감 정도도 변함이 없다. 설령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 해도 단 며칠 사이에 이렇게 될 만큼일까. 기억을 되새겨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지만 곧 어떠한 고민보다 강한 귀차니즘이 나를 뒤덮었다. 달리 신경쓸 일도 이것저것 생기고 해서 일단 고민은 제쳐두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앉으니- 순간 떠올랐다. 요 며칠 사이에 달라졌던 거.

나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코 좋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게 딱히 스트레스로 여겨지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빠져나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을 일회성으로 몇 번 파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회성이라면, 루트는 안다. 얼마 정도가 들어오는지도 안다. 하지만 그건 위험 요소가 좀 크니까 이왕이면 연말을 기다리는 게 낫겠지. 본격적으로 12월이 되면 섹스까지 팔지 않아도 되는 단기 루트가 잔뜩 생긴다. 그 정도면 다칠 일도 없을 테니까 괜찮겠다- 하고.

왜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집안엔 돈을 버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당장 정기적인 알바 자리를 갖기에는 시간도 몸도 따라주지 못하니까 일시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본 걸 수도 있겠다. 아예 그쪽으로 빠질 게 아니니까 인생 루트에 큰 지장도 없을 거고, 단기에다 도우미만이라면 몸도 상하지 않는다. 손님만 잘 만나면 좀 덜 만져질 수도 있을 거다. 그냥 분위기 띄우려고 불러다 놓을 뿐이지 별로 건드리지도 않는다고, 남자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나쁜 일인가. 나는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말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다. 왜 나쁘냐고 묻거나 나쁘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말하는 남자는 여럿 봤어도. 내 생각을 말하라면, 나는 그 일이 일종의 자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자들이 그런 일을 택하게 만드는 세상의 오래된 가치관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세상의 가치관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는 남자들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쁘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했다. 그들은 그런 일이 나쁘지 않다고 혹은 정당하다고 주장할 때, 그것이 여자들에게는 간혹 너도 그런 일을 해도 된다는 허용의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무리도 아니다. 그런 주장을 할 때의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손님 이외의 것으로는 결코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눈앞에 앉아있는 여자와 상품이 되는 여자가 서로의 자리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생각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그들의 말에 따라 편견을 버리고 나 또한 잠시 그런 알바를 하려고 해, 라고 말했을 때 그들이 뭐라고 할지는 잘 모르겠다. 섹스를 파는 게 아니라면 합법이기까지 한 나라다. 서로의 동의하에 서비스를 판매하고 구매하는데 뭐가 나쁘다는 거냐던 그 말을 바꾸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친구가 있어도 자신들의 구매는 나쁜 게 아니라고 말했던 사람들이니까 남자친구가 있어도 나의 판매는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해줄 거라는 생각은 든다. 세상엔 더 심한 사람들도 있다는, 섹스까지도 아니니까 그 정도면 괜찮지 않냐는 말은 굳이 단어를 바꿀 필요도 없겠다.

합리화, 다들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내가 뭐라고, 내가 내게 저렇게 말하는 남자들보다 뭐 그리 잘난 사람이라고 내 가치관과 모순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어른답지 못한 고집이나 세우느라 저리도 효율적인 길을 포기하고 있어야 하나. 자신의 힘으로 먹고살 만큼의 돈을 버는 것이 어른의 기준이라 한다면 나는 정말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보다도, 연배로나 사회적 기준으로나 어른인 그들의 이야기에 나 역시 수긍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 또한 상황에 맞추어 취할 이득은 취하며 사는 게 덜 억울한 일 아닐까.

며칠 내내, 잠시 멍해졌다 싶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 방학땐 무슨 알바를 할까 고민하듯이. 생각만으로는 그다지 우울하지도 않았고 괴롭지도 않았다. 가치관이 뒤집히려 드는 게 기분나쁘긴 했지만서도, 다들 그러고 사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마저도 가라앉았다. 게다가 아직은 생각일 뿐이니까.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 후라면 모를까 벌써부터 자신의 생각에 제약을 걸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정말이지, 사랑받는다는 건 이상하다. 모든 합리화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자신을 그건 자신을 학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 건 슬프고 괴로운 거라고 느끼게끔 만든다. 내가 이런 구상을 하고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한껏 사랑받고 있노라면 문득문득 괴로워진다. 내 몸을 자기 몸보다 소중하게 대해줄 사람이 있는데, 그런 내 몸을 단지 자신들의 다양한 욕구를 위해 쉽게 다룰 사람들 앞에 던져놓는다는 건 무언가 '아닌' 것 같다. 나의 가치관에 동의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타인들의 가치관에 내 생활을 맞추려고 애써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정말 모든 합리화는 다 끝났는데, 그런데도 이런 생각만으로도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기분이 나쁘다. 왜 내가 내 생각에 행동에 스스로 제약을 걸고 있는 거지? 왜 죄책감이 들지? 왜 내가 연인의 존재 때문에 내 생각에 스스로 불편함을 느껴야 하지? 그가 내 곁에 없었으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

...피부가 급격하게 나빠질 만 하구나. 나는 납득했다. 그리고 생각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내 피부는 중요할뿐더러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더욱 소중하니까. 불편한 생각이면 안 하면 되잖아. 여기까지 쓰고 8시간 조금 넘게 자고 일어났다. 아아, 더 자고 싶다. 더 자야지. =_=


by 고이 | 2009/11/07 14:26 | 잡상 | 트랙백 | 덧글(8)

세상은 다정해지기 위해 진보한다.


책 읽어주는 사람.
 - 작나무님 댁에서 트랙백.


일전에 슈퍼스타K에 출연해 일약 유명해진 시각장애인 김국환씨를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그는 인터넷상의 사람들의 반응에 기쁘기도 했지만 그만큼 달리는 악플에 상처받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시각장애인이라며, 어떻게 악플을 '봤다'는 거지?'

흔히들 시각장애인이 글을 보는 방법이라면 타인이 읽어주는 것을 듣거나 혹은 점자로 쓰여진 글을 읽는 방법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컴퓨터가 보급된 지금은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모니터상의 텍스트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시각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그가 인터넷상의 악플을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걸러냄 없는 악플들을 그대로 들어야 했으니 아마 앞부분만 잠깐 보고 재빨리 보지 않고 넘길 수 있는 비장애인들보다 충격이 더 크지 않았을까.

9월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전자도서를 입력하는 일이다. 앞서 말했던 시각장애인용 소프트웨어에는 텍스트 형식의 파일을 커서의 이동을 따라 그대로 읽어주는 기능도 들어 있다고 한다. 이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책이 텍스트 파일 형태여야 하는데, 알다시피 전자도서를 텍스트 파일 형태로 판매하는 것은 어떤 출판사도 기꺼워하지 않을 일이다 보니 그 존재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래서 기존의 책을 텍스트 파일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녹음된 책이나 점자책을 읽으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그런 형태의 책들 역시 보급량이 지나치게 적다. 하지만 단지 '적다'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일 큰 문제는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가 없다'라는 것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언제 시각장애인용 녹음도서 혹은 점자책으로 만들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읽고 싶은 책이 단순한 교양도서라면 그냥 시각장애인 도서관에 신청해 놓고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읽어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당장 읽어야만 하는 교과서나 각종 공부용 교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시중에 판매되는 교재 중 시각장애인용으로 만들어진 책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도서관 등에 일부 있긴 해도 그것은 아주 오래된 교재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당장 6개월 후에 자격증 시험을 쳐야 하는데 몇 년 전 교재로 공부할 수 있겠어요? 만약에 오늘 교재를 사더라도 1년은 기다려야 읽을 수 있다고 하면 또 어떻겠어요." 내가 전자도서 입력에 앞서 교육을 받기 위해 찾아간 곳의 복지사-그도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복지관에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전자도서를 공급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만 접속가능한 웹상의 전자도서관 운영이 한 가지 방식.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시각장애인에게 직접 우편으로 책을 받아서 전자도서로 만든 후 원본과 함께 돌려주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길어도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의 시간이면 된다고 하니 그 정도면 아주 늦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셈이다. 활동은 철저한 분업 체계로, 책의 모든 페이지를 복사하거나 혹은 원본 페이지를 분할해서(주로 개인이 신청한 책의 경우) 5~60페이지 정도로 묶어 찾아오는 봉사자들에게 한 묶음씩 맡긴다. 전자도서 입력은 2~3주 안에 끝내서 메일로 보내야 하며 원본을 받은 경우에는 복지관에 반납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렇게 모인 전자도서 파일들은 복지관 쪽 작업에 의해 최종적으로 교정되고 합쳐져서 원본과 함께 신청인에게 되돌아간다.

그저 받아온 페이지의 내용을 정해진 형식에 맞게 워드로 쳐서 메일로 보내기만 하면 그뿐, 인 아주 단순한 작업이지만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보람을 갖기를 바란다- 시각장애인의 현실적인 어려움에서부터 전자도서 입력 방식에 이르기까지 약 두 시간에 걸친 교육 시간 끝에 복지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보람을 느낄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는데, 그게 약 보름쯤 전에 새로 입력할 자료를 받으러 찾아갔던 때였다. 봉사자가 찾아가면 가득 쌓여있는 원본 및 복사한 페이지 묶음들을 차례대로 하나씩 건네주는데, 그날 내가 받은 것은 9급 공무원 시험 기본서(의 일부)였다. 그것도 나온 지 두 달도 채 안 된 2010년판 기본서. 교재 특성상 글자 양도 많고 표도 많아 좀 까다로울 텐데 하면서도(들어서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표는 일일이 풀어서 입력해야 한다) 보다시피 공부해야 하는 거니까 좀 빨리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쩐지, 정말로 짠한 기분이 들어서, 2주 안에 해달라는 걸 나흘만에 끝내서 메일로 보냈다. 평일이다 보니 하루에 한 시간씩만 붙잡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되었다. 원래도 타자 속도는 빠른 편에 속한다고 자부하지만 다른 도서 입력할 때는 그렇게까지 빨리는 안 되던데, 역시 정말 필요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하니 그냥 할 때와는 능률부터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보내고 보니 주말이 끼어서 이틀 후에 원본을 반납하러 복지관에 들렀는데 빨리 보내준 덕분에 작업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는 인사를 들었다. 사실 내가 받은 묶음은 다른 봉사자가 맡았다가 개인사정상 시간을 내지 못해 그냥 원본만 돌려보낸 탓에 마지막까지 작업을 못 하고 남아 있던 부분이었던 거다. 빨리 끝내기를 정말로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나는 처음 그 복지관에 봉사활동 희망자로서 들렀을 때 좀 의아하게 여겼던 것이 있었다. 모니터가 꺼져 있는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을 하는 분이 두엇 계셨던 거다. 알고 보니 그 분들 또한 시각장애인이셨다. 지금도 원본 반납차 혹은 새 입력 자료를 받으러 들르면 그 분들이 내 봉사활동 내역을 입력해 주신다. 꺼져 있어 새까만 모니터 앞에 컴퓨터와 연결된 이어폰을 끼고 앉아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같이 봉사활동을 다니는 지인은 "모니터가 꺼져 있으면 내 눈엔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근데 그 분들은 새까만 모니터 앞에서 일을 하니까, 그걸 보고 있으면 그 분들이 아니라 내가 장애인이 된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비장애인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을, 시각장애인들이 '보지 않고도 알 수 있'게끔 해준 것은 분명 기술의 힘이다. <마루이치 풍경>의 '세상은 다정해지기 위해 진보한다'는 말을,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도서 입력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 검색해보니 각 지역별 시각장애인 도서관이나 복지시설들에서는 거의 하고 있는 듯. 내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부산의 호산나 복지재단.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참여해 봐도 좋을 듯. :)

by 고이 | 2009/11/05 02:14 | 생활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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